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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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세용 목사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설교요약 :

"주님께 신임 받은 자의 자세"
2020년 11월 1일 주일예배
디모데전서 1 : 12 - 17 ; 시편 101 : 6


국회의원을 태운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길 아래 논두렁에 추락했는데, 마침 농부가 그 것을 보고는 땅을 파고 국회의원을 정성껏 묻어주었습니다. 경찰이 부서진 승용차를 보고 차적 조회 후, 국회의원 승용차임을 알고 깜짝 놀라 그 농부에게 물으니, 농부는 사고난 경위와 자기가 그 차에 탔던 국회의원을 고이 묻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놀란 경찰이 "아니 그렇담 그 국회의원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까?" 그러자 농부 왈 "뭐 살아있다고 떠들었지만 그 사람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요즘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소유나 그가 지닌 능력과, IQ 등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는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의 신용지수, 즉 크레딧입니다. 신용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국가의 경제나 회사도 신용등급, 즉 트러스트에 의해 평가됩니다. 여러분 공산주의가 왜 무너졌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기술도 있었고 자본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는데 신용이 없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서로 믿지 않는 불신사회로서 모든 것을 비밀경찰이 감시하며 서로 의심하다,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차 대전 후 영국이 전쟁에는 이겼으나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때 잭슨과 루이스라는 청년은 모조품을 진품으로 속여 이익을 남겼는데, 이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되자 물건을 안 사주어 힘들어졌습니다. 두 사람이 한숨을 쉬며 신세 타령하다 아주 기발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말을 안 믿어주니 지금부터 10년 간 절대로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다 결국 모두 믿게 될 때 크게 한탕하자.' 그 날부터 잭슨과 루이스는 정직한 장사했습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안 믿어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 남을 속일까하다가, 9년 뒤에 크게 한 탕 하기 위해 끝까지 참기로 다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10년 후 그들이 다시 만났는데, 그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정직한 잭슨', '신용 있는 루이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마음먹으면 크게 한 탕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10년간 장사했더니 사업이 크게 번창해, 더 이상 사기 칠 필요 없었습니다. 비록 올바른 목적은 아니었지만 목적을 놓고 선을 행했더니, 그 정직으로 귀한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의 이익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거나 양심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피스티스'라는 이 말은 믿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충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때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나의 충성을 믿으실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을 맡기시고, 순순한 마음으로 충성하면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면 그의 심령뿐 아니라, 그의 가정과 일터와 후손에게도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2-13). 자신은 본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이었으나 하나님께 긍휼을 입었다면서, 바울은 특별히 자기를 능하고, 충성된 것으로 여겨주셔서, 자기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문장은 '나를 능하게 하신 것'이 먼저요, 다음으로 '충성되이 여겨주신 것'이 다음이요, '직분을 맡겨주신 것'이 세 번째지만, 일의 순서는, '나를 충성되게 여겨주신 것'이 먼저요, 그 신임으로 '직분을 맡겨주신 것'이 다음이요, 그리고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 나중입니다.


그 순서에 따라 바울이 드린 감사를 살펴봅니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충성되게 여겨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전의 바울은 자기 고백대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딤전1:13)였습니다. '비방자'란, 자기의 입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인데,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을 욕하고 더럽혔습니다. 다음 '박해자'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방해하는 자로서,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서 대적하고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可)편에 던지기도 하며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또 '폭행자'란 행동으로 복음을 방해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찾아갈 정도로 복음을 방해하는데 광분했던 전력이 있었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딤전1:13). 이것은 바울의 변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렇게 봐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무자격한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라면, '긍휼'이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자에게 면제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행한 일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 모든 일이 그가 모르고 한 일로 간주하여, 그에 대한 벌을 면해주신 것입니다. 모르고 한 일도 죄는 죄이고, 실수도 잘못은 잘못입니다. 과실치사도 정상이 참작될 순 있지만 그에 따른 응분의 대가가 있는 법인데, 하나님은 바울의 그의 무서운 죄에 대하여, 그가 모르고 한 것으로 간주하셔서 그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가 행한 일들을 오히려 충성으로까지 여겨주셨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모든 일까지 하나님께 바친 충성으로 인정해주십니다. 잘못했지만, 모르고 한 것이니 문제삼지 않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봉사와 충성으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몰랐던 당시의 바울로선 이것도 하나님을 위한 충성으로 여긴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젖어있던 바울로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며 전도하는 것을 보고, '이들은 잘못된 이단들로서 유대교에 해로운 존재들이니 이들을 없애야한다, 이들을 죽이고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다'고 생각하여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그토록 열심이었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결과나 그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와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바울이 행한 모든 일들까지도 하나님을 위한 충성으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전에 자기가 예수님을 모독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자기가 모르고 한 일로 여겨주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런 일까지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인정해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죽기까지 충성했습니다.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정절을 바치고, 남자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 없고, 그 무엇도 믿을 것이 없다'는 이 불신시대에, 누가 나를 믿어준다면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일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그토록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했는데도, 그것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간주하시고 자기를 믿어주신 그 신임이 너무 감사하여,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마쓰시타 전기회사를 창설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쌍 갈래 전구소켓을 발명해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가 처음 쌍 갈래 전구소켓을 특허내자 주문이 쇄도해 종업원들은 밤샘작업을 하며 일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생산에 쫓기던 마쓰시타가 거래처에 가면서 종업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내일 납품해야할 물량은 오늘 밤새워서라도 끝내야합니다. 여러분들 조금만 참고 일해주십시오." 그러나 마쓰시타가 나가자 공장의 기계소리가 하나 둘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사장도 없는데 천천히 합시다. 일은 내일 해도 늦지 않는다고." 모두 사장의 간곡한 부탁을 못 들은 듯 밖에 나가 야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끝까지 남아 기계를 돌리던 한 종업원도 일을 단념하고 밖으로 나가려할 때, 거래처에 갔던 마쓰시타가 숨을 헐떡이며 공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안색이 변했습니다. "다들 어디 간 거야? 일은 다 끝났나?" 종업원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생각에 시큰둥하게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내일 일하겠다고? 게다가 너마저 나가서 놀겠다는 거야?" 순간 그 직원은 '너마저'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장님이 날 그토록 믿고 있었단 말인가!' 그 말에 감동한 그는 마쓰시타의 충직이 되어, 훗날 산요전기의 부사장을 지낸 구도오 세이이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믿고 불러주셨는데, 그 믿음을 배신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장 고약한 것이 배신인데, 우리는 결단코 주님의 기대를 배신해선 안되겠습니다.


둘째, 바울은 자기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자기를 충성되이 여겨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믿고 직분을 맡겨주신 그 은혜가 무엇보다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셔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군대는 지원병은 없고 징병만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기분대로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직분을 맡겨주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처럼 부족한 인간들에게 일을 맡겨주실까요? 그것은,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상주시고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 일만 목적이라면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에,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 이뤄질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가장 지혜롭게 준행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는데, 우리처럼 부족하고 허물 많은 인간에게 맡기시는 것은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어떤 이는 말합니다. "인생이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성취하도록 맡겨주신 삶과 시간의 길이다." 어떤 사람은 길게 살고 어떤 사람은 짧게 사는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이 눈감을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가장 부러운 고백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하신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인권운동을 하고 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39세에 총탄에 아깝게 쓰러졌습니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비극 중에 최악의 비극은 젊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75살까지 살아도 한 번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그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이런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마틴 루터 킹에게 너무나 짧은 시간밖에 주시지 않았다. 그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가 사랑과 자유의 가치를 깨우쳐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셋째, 바울은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란 말은 [엔두나모오]라는 헬라어인데, 영어로는 엠파워(empower)입니다. '능력을 주신다', '가능케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에 그냥 맡기시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으면 그 다음에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믿음과, 모든 은사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일과 함께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바쳐야 할 자세는 오직 하나, 충성뿐입니다.


누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크게 성공한 분에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나의 가장 중요한 활동모토는 사랑이요, 내가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확증은 허영과 이기심을 버린 것이며, 가장 확실한 계획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알의 밀알이 되려고 하는 데야 아무도 말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데 돈이나 지혜나 지식이나 건강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그것은 언제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언제든지 갖춰야할 것은 바로 충성입니다.


2006년 3월 미국 LA 대중교통국에서 특별한 퇴직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날은 지난 81년 간 이 회사에서 일해온 아서 윈스턴의 100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버스운전기사가 그의 꿈이었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1920년대 그에게 이 꿈은 멀기만 했는데, 열여덟 살 때, 당시 퍼시픽전철이었던 LA 대중교통국에 입사하였습니다. 버스를 닦고 기름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는 늘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출근했고,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습니다. 딱 하루 병가를 낸 것은 1988년 어느 월요일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1996년 빌 클린턴은 그를 '세기의 일꾼'으로 표창했습니다. LA대중교통국은 1997년 그가 담당했던 구역을 그의 이름대로 '아서 윈스턴 구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100세 생일날 퇴직하는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범한 버스 수리공인 내게 이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다니,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쉬지 않고 움직일 거예요. 내 나이에 앉아 버렸다가 못 일어서면 큰일이니 말이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믿어주시고, 직분을 맡겨주신 주님께 어떤 자세로 일했습니까? 첫째,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딤전1:12). 주님의 은혜를 깨닫자, 그는 먼저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은혜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은혜란 헬라어로 '카리스'라 하여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의 인생을 거듭나게 하고, 세계관을 바꾸고, 운명까지도 바꾸는 놀라운 능력과, 성화(聖化)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 목사 사모님이 병약하여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당시 식모라고 부르던 가정부를 두었습니다. 스물 살이 채 되지 않았던 처녀아이가 그 목사님 댁에 가정부로 일했는데, 그 자매는 자기의 처지에 늘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는데 이 자매가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자 삶이 변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자기 처지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이 방에 누워있는데 부엌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불평으로 저렇게 중얼거리나 살며시 그 말을 엿들었더니, 밥을 푸면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밥을 푸면서 "하나님 제가 정성껏 이 밥을 지었으니 우리 목사님 이 밥 드시고 목회 잘하시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사모님 밥을 푸면서 "하나님 제가 이 밥을 열심히 지었으니, 우리 사모님 이 밥 드시고 소화 잘되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아이들 도시락 싸면서 "아이들 이 밥 먹고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더랍니다. 그 기도를 들은 사모님은 얼마나 감동했던지, 결국 그 가정부를 수양딸로 삼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내외가 그 아이의 부모가 되어 혼수까지 준비하여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는 젊은 집사님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지금은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불평과 원망이 감사로 바뀐 것입니다.


둘째, 겸손한 자세로 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회심하고 사역하며 초기였던 AD 59년에, 자신에 대해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15:9)라고 고백하더니, 6년 후인 AD 64년, 로마감옥에서 에베소교회에게 쓴 편지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엡3:8)라고 고백했고, 그 후 AD 65년 서서히 다가오는 순교를 의식하면서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한 본문에서는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자신을 표현하면서, 점점 자신을 낮춰 갔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알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믿음은 최상의 것을 얻는다, 겸손은 최상의 것을 지킨다, 사랑은 최상의 것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 앞에 진실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지난 날 자신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외손녀가 제 아내에게 "할머니, 요즘 제가 사춘기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에, 제 아내가 놀라서 "사춘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데?"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내가 요즘 조금 건방져지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일곱 살짜리가 벌써 사춘기일 순 없지만, 사춘기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는 성징이 나타나데, 사춘기가 됐다고 건방져지면 그건 문제 있습니다. 그런데 직분을 맡는 것도 어떤 면에서 신앙의 한 단계 성장인데, 직분을 벼슬처럼 여겨 그 아이 말처럼 건방져진다면, 자신도 불행하고 교회도 어려워지고 맙니다.


셋째, 그는 맡은 직분에 충성을 다하고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딤전1:17). 그는 주님이 맡겨주신 직분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충성했지만, 그것을 자기 공로나 업적으로 자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는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으나, 이렇게 더 많이 일할 수 있었던 것도 은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국의 광고회사 중역인 해리스는 친구들과 식당에 들어가는데 행색이 남루한 한 남자가 "한 푼만 줍쇼!"하고 구걸합니다. 그는 노숙자 거지였는데 해리스에게는 지갑에 현금이 없어 그냥 지나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갑에 있던 신용카드를 꺼내주며 "나 당신 믿어도 돼요?"라고 묻자 그 거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카드를 내줬더니 같이 있던 친구들이 "야 너, 미쳤니?"하며 난리입니다. 노숙자는 그 카드를 받아 가더니 잠시 후 돌아와 "죄송합니다. 좀 많이 썼어요. 미안해요"하며 카드와 영수증을 내미는데 구입한 것이 '냄새 제거제, 목욕 세제, 담배 한 갑, 생수 한 병' 총 25달러를 썼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믿어줘서 고맙습니다." 거지도 믿어주었더니 배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노숙자는 그 사건으로 거지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믿으시고, 당신의 영광스런 이름과 함께 우리의 일생을 맡겨주신 주님께 어떻게 응답할까요?


중국 춘추시대에 국경을 서로 접했던 오(吳), 초(楚), 월(越)나라가 서로 대립하며 패권을 다툴 때, 오 나라의 왕 합려가 초나라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오 나라의 대장군 경기가 배반하여 초나라에 투항하자, 이로 인해 오 나라는 경기가 이끄는 3만 군사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때 손자병법을 쓴 합려의 책사인 손무는 '경기의 부대와 싸우지 않고 경기를 제거하는 계략'을 세웁니다. 손무는 술을 잘 빚는 자기 충신인 '요리'를 경기를 제거할 첩자로 만듭니다. 그러자 요리는 합려에게 '왕에게 나쁜 술을 바쳤다는 빌미를 내세워 제 팔을 하나 자르라'고 하여 합려는 그의 팔을 자릅니다. 이어서 요리는 자신의 불충을 내세워 '내 아내와 두 아이를 처형하라'고 하여 합려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그의 처자를 처형합니다. 그리고 요리는 단신으로 강을 건너 초나라에 투항한 경기의 진영에 찾아갑니다. 경기는 신중하고 지략이 뛰어났으나, 오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알고 있었기에 손무의 계략에 말려들어, 요리를 거두여 그의 수하에 둡니다. 이로 인해 경기의 신임을 받은 요리는 기회를 틈타 손무의 계략을 따라 경기를 암살합니다. 그래서 손무는 오나라와 경기에 속한 초나라의 6만 군대를 이깁니다. 요리는 군주를 위해 자신의 팔과 부인과 자식들을 희생시켜, 오나라를 지켜내니, 손무는 요리의 희생과 충성에 걸맞은 영화를 주려했는데, 요리는 '나는 죄 없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큰 죄인이므로 그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자결하여 그의 삶을 끝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10)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충성을 다하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없으면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충성만은 우리가 갖추어야 합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시101:6).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맡겨주신 기대에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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