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2020-01-19 441회

동문교회
031-701-0691 /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523번지
손세용 목사

에스겔 47장 1~5절

설교요약 :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2020년 1월 19일 주일예배
에스겔 47 : 1 - 5 ; 디모데전서 4 : 15


평소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하지 않던 학생이 어느 날 지각하자,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 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려서 그걸 찾느라고 늦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은 동전을 찾아드리는 것도 좋지만, 학교 오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미안하다고 말하고 학교에 와야한다고 일렀더니, 소년은 자기가 그 동전을 밟고 있어서 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년은 그 동전을 발로 밟고서 아저씨가 찾기를 포기하고 갈 때까지 동전 찾는 시늉하느라 지각했던 것입니다. 소년은 이렇게 해서 그 동전은 차지할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학교를 지각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가만히 서있을까요?


하버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타이베이의 멍화린 교수의 책 [10일 안에 변신하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하라사막 서쪽 한 작은 마을은 매년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데, 레빈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에는 전혀 개발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삭막한 사막을 떠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충격을 받고 레빈은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어디로 가든 결국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레빈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어서 3일 만에 사막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레빈은 마을 청년 한 명을 데리고 그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 보았더니, 밤낮 열흘을 걸었지만 11일째 되는 날 다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도 북극성을 몰랐던 때문'이었습니다. 레빈은 그 청년과 함께 낮에는 휴식하고, 밤에는 북극성을 따라 걸으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더니, 과연 그 청년은 사흘만에 사막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청년은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그 마을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제대로 찾을 때 시작된다!" 우리도 자신이 갇혀있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합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리고 작년과 같은 올해, 올해와 같은 내년이 되어 10년 전과 같이 앞으로 10년도 지나가 버려 결국 인생이 파장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바른 목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주간 교회에서는 신년부흥성회를 열고, 풍성한 은혜와 확고한 믿음의 전진을 다짐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제사장가문의 선지자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환상입니다. 때는 주전 593년경, 바벨론제국의 제2차 유다침략 때 포로로 끌려와 환상을 본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겔47:1).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축복이 생명수 강으로 흘러나와 황무하고 죽었던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온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킨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 동편 문에서 흘러나온 강물은 흘러갈수록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47:3-5). 먼저 1천 척(약 5백m)씩 측량할 때마다 강물이 발목에 잠기고, 다음은 물이 무릎에 오르고, 그 다음은 강물이 허리에 오르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이 걸어서는 건널 수 없고 헤엄을 쳐야만 할 만큼 깊은 강물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발목의 깊이에서 나중엔 헤엄쳐야할 깊은 강물로 깊어져 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성전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살리는 생명수 강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신앙의 성장의 단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발목의 신앙, 무릎의 신앙, 허리의 신앙, 그리고 헤엄칠 만큼 창일한 신앙입니다. 이러한 각 단계의 신앙은 우리의 믿음이 점점 성장해나는 모습으로 어떻게 상징될 수 있을까요?


첫째, 발목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발'은 무엇을 뜻할까요?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시122:1-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고 하자 너무 기뻐서 곧장 하나님의 전으로 달려가 그 성문 안에 서서 하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발목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찾아가는 신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첫 단계에서 가장 힘써야할 것은 열심히 하나님의 전을 찾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자처해도, 하나님의 전을 멀리하면 결코 좋은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첫 단계는 발걸음으로 열심히 교회를 찾아 나오는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업혀서도 나오고,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도 나오고, 부축을 받아서도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발목 신앙을 잘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한 생명을 교회로 이끄는 일이 해산의 고통과 같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체험하는 바지만 처음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모처럼 교회에 한번 나가볼까 했더니, 평소 오지 않던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가, 갑자기 일이 생겨 나갈 수 없게 하고, 막상 교회에 나가려하니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져 교회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집니다. 이런 것들을 다 뿌리치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교회에 나오는 일에도 확고한 결단이 있어야만 합니다.


초대 교회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이 잘 모인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로 모였습니까? 안식 후 첫날, 일주일에 한 번 모였습니까? 성경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전에 모인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행2:46).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여서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자주 모였기에 그들은 그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모이는 것이 번거롭고 힘든 일일 수 있으나 모이는 데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만으론 서로 격려하기에 너무 부족합니다.


어떤 이는 예배당에만 드나든다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하지만, 서양 속담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우리의 발걸음이 멀어지면,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해 전 브리티시 위클리(British Weekly)지에 편집자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를 게재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설교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고 설교준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아주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왔고 그 동안 제 추산으로는 적어도 3천 번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놀라는 것은 그 설교 중에 단 한 편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시간을 달리 썼다면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편지를 두고 평신도들과 성직자들 간에 설교 찬반양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한 통의 편지가 그 논쟁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저는 결혼한 후 30년 동안 32,850회의 식사를 했는데, 거의 제 아내가 요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는 그 많은 식사 중 한 끼의 메뉴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식사를 할 때마다 매끼 영양을 공급받았습니다. 저는 그 많은 식사가 없었더라면 이미 오래 전에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먹은 음식이 몸의 양분으로 공급되는 것처럼 들은 말씀은 기억과 상관없이 영의 양식으로 공급됩니다. 오스 기니스는 "서양인에게는 시계가 있고, 아프리카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믿음의 진보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올해 교회출석부터 늘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무릎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사도들도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눅22:41).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행20:36). 무릎의 신앙이란 기도하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그저 예배당만 오가는 신앙에 머무르다가, 어느 사이에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신앙의 단계로 발전합니다. 처음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줘야만 하지, 내가 기도하는 것은 왠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실 것 같고, 또 무얼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몰라 기도하려고 눈감으면 잡념만 자꾸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직접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게 되고, 또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공중기도도 하며,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도 하는 단계까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기도하는 내용만 들어봐도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저 추상적인 내용만 열거하거나, 또 어떤 이는 자신과 자기 가족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속에 감사와 회개는 없고 천편일률적으로 달라는 기도뿐입니다. 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보다는 이 땅의 것에만 집착하며 세속적인 것만 구하는 기도도 초보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천국은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기도생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성자' 조지 뮬러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의 빈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기도의 빈곤이다." 그는 일생 5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조지 뮬러가 영국의 브리스톨 거리를 걷다가 수많은 고아들을 보고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고아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하겠다고 결심하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2펜스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2펜스를 가지고 고아원을 시작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금을 요청하지 않고 60년 동안 만 명의 고아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제가 고아 돌보는 사역을 합니다'고 알리지 않은 대신 오직 기도에 헌신했습니다.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며 절박하게 기도할 일들이 너무 많았기에 기도제목이 생길 때마다 기도노트를 만들어 기록하며 끈질기게 기도했고, 기도가 응답되면 표시를 하고 감사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기도노트에 기도제목을 3천 페이지 이상 빽빽하게 기록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그의 기도수첩을 보고 5만 번 이상 응답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기도노트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아들에게 아침을 줄 음식이 없어 전날 밤부터 간절히 기도하는데, 새벽 3시에 갑자기 빵공장 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자려고 하면 자꾸 누가 저를 깨우는 것 같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지금 공장에 나가 빵이나 구우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목사님에게 빵 좀 갔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 날 아침 고아들은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우유가 떨어져 몇 시간 기도하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한 트럭 운전사가 말합니다. "목사님! 제 트럭이 고아원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고장나 꼼짝 못하게 됐습니다. 우유를 싣고 가던 중인데 우유가 다 상할 것 같으니, 목사님이 우유를 좀 가져갈 수 있습니까?" 그래서 부족한 우유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엔 자물쇠"라면서 "기도가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허리의 믿음 모습입니다. '허리의 믿음'이란 허리에 짐을 지고 수고하듯,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족식을 하실 때,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했다"(요13:4-5)고 하여, '허리'란 누군가를 위해 수고하며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엔 교회 출석만 하다가, 다음은 기도하고, 이제는 봉사하는 단계로 성장합니다.


사람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이 자기만 위해주기 바라다가, 언제부터 자기도 누군가를 위해 일하면서,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아가씨가 결혼하여 시부모와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어른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은혜를 알고 봉사하면서부터 성숙해집니다. 봉사하지 않고는 결코 믿음이 자라지 않고 항상 초보 상태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헌신하지 않는 한, 약속과 희망들만이 난무하게 되고, 아무런 계획이 설 수 없다"고 말했고, 토마스 에디슨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고 만다. 왜냐하면 그 기회는 작업복을 입고 있고,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전도사로 섬겼던 교회에 어느 날 장님 한 분이 교회에 등록하여, 제가 그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이분이 말합니다. "나는 돈이 없어 교회에 많이 헌금할 수도 없고, 눈이 보이지 않아 달리 봉사할 수도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먹고살기 위해 배운 안마인데, 이것을 통해서도 봉사했으면 싶은데, 담임 목사님 몸을 안마해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께 그 말을 전했더니 목사님이 "어떻게 교인은 안마를 하고, 목사는 그 안마를 받고 있겠느냐? 그 마음만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을 줄 안다"고 하시며 사양하여 안마봉사는 하지 못했지만, 장님도 봉사하려는 그 자세가 참 귀했습니다.


넷째, 자신의 힘으로 애쓰는 것이 아닌,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47:5). 물이 얕은 곳에선 물 속을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지만, 물이 깊은 곳에선 물위에 몸을 맡기고 물위를 헤엄쳐야합니다. 이것은 성령께 자신을 맡기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의지나 세속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은 자신의 의지나 계획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되는 것이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한 기자가 에디슨에게 물었습니다. "그 99%의 노력과 1%의 영감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그러자 에디슨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사실은 1%의 영감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수고, 땀과 열심 모두다 중요하지만, 여기에 1%로 보여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의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피땀 흘려 훈련하여 챔피언이 되는 것 같아도, 먼저 재능과 건강이 주어져야 합니다. 수험생이 밤잠 못 자고 공부하지만, 먼저 기본적인 IQ가 있어야 합니다. 사업가가 근검절약하고 불철주야 노력하여 사업에 성공한다고 하지만, 먼저 때와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결코 인간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모든 일에 먼저 성령의 은사가 주어져야만 합니다.


무디는 "온 세상을 다 준다해도 성령충만 받기 전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부흥운동가 찰스 피니는 성경을 많이 읽고 회개하고 기도생활 하던 사람으로 어느 날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받았는데, 그는 이전엔 성령충만에 대한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치 전자파가 온몸과 영혼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 하나님의 숨결과 같고 거대한 선풍기를 자기 앞에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어, 그는 기쁨과 사랑으로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성령은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전 동편 문에서 흘러나온 물이 발목 깊이에서, 무릎의 깊이와, 허리의 깊이로, 이어서 능히 건널 수 없는 헤엄쳐야할 만큼 깊어지더니, 그 강이 아라비아 바다와 사해에까지 흘러가면서, 이 강물이 닿는 곳에는 생명의 회복이 일어났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많아지고, 강 좌우엔 각종 실과나무가 달마다 먹을만한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었습니다(겔47:8-10, 12). 우리의 믿음도 진보할 때,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이들까지도 풍요해집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는 책을 쓴 다하라 요네꼬는 18세 때 어머니를 잃고 사는 것에 회의를 느껴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팔다리 중에 손가락 3개만 붙은 오른팔만 남았습니다. 손발도, 살 기력과 희망도 없었던 그녀는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수면제를 모아 완벽한 자살을 준비했습니다. 어느 날, 타하라 아키토시란 신학생의 병원전도를 받고 성경에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이 말씀을 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오른팔에 손가락이 무려 3개나 붙은 사실에 감격하면서, 그때부터 그녀는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점차 그녀의 내면은 아름다워졌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전도했던 타하라가 청혼하여, 둘은 가정을 이루고 두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책에 '감자와의 전쟁'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음식준비를 위해 감자껍질을 벗기는데 세 손가락만 남은 오른팔을 비웃듯 감자가 손을 벗어납니다. 필사적으로 식칼을 들고 감자를 따라다녔지만 감자의 비웃음은 계속되었습니다. 무서운 절망감으로 그녀는 식칼로 자신을 찌르고 싶은 충동까지 느낄 때,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합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남편과 자녀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를 위해 감자요리를 하게 도와주세요." 곧 한 생각이 떠올라 감자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식칼로 반을 잘랐습니다. 그때부터 감자는 순한 양처럼 얌전히 한 곳에 정지되어 껍질을 위부터 살살 벗겨 맛있는 감자요리를 하여 그 날 식탁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리, 청소 등 거의 모든 살림을 혼자 하며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힘내세요. 하나님은 나 같은 장애인도 사랑합니다. 당신은 귀한 것을 잃었겠지만 그래도 남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면 삶은 여전히 황홀한 것입니다."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도 '삶이 지겨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황당하게 하지만, 중증자애의 몸을 가지고도 '사는 것이 황홀해요!'라고 말하는 그녀로 인해 우리도 황홀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면 절망은 없습니다. 사랑을 행하면서 앞을 향해 나아가면 큰 은혜의 바다가 펼쳐질 것입니다.


론다 번, 씨크릿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원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심각한 전염병이 바로 '싫어 전염병'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집중하고, 뭔가 행동하면서 결국 이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우리는 싫은 것만 생각하며 주저앉아 있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도록 힘씁시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새해 무엇보다 먼저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범사에 윤택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에스겔 47장 1~5절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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